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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외환위기 닥치며 주택사업 실패 빚더미…`마지막 여행` 홍콩식당가 보고 힘 얻었죠
기사입력 2017.07.14 15:49:01 | 최종수정 2017.07.14 20: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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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서울 논현동 `본가` 3층 조리개발실에서 직원과 함께 새 메뉴를 테스트하고 있다. 그는 머릿속에서 상상한 메뉴를 실제로 요리해볼 때가 많다. [이충우 기자]

1998년 겨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51)는 죽으려고 홍콩에 갔다. 쌈밥집으로 돈 벌어 목조주택 사업을 키우려 했으나 외환위기로 쫄딱 망했다. 빚만 17억원 남아 더 살 의지가 안 생겼다.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보니 수중에 120만원이 남아 있었다.
`어차피 죽을 거면 내 평생 소원이던 미식의 천국, 홍콩에 가서 죽자`고 결심한 후 비행기 티켓을 샀다. 유람선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수영을 너무 잘해 포기했다. 고층빌딩 옥상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자꾸 사업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서울 논현동 고깃집 `본가`에서 만난 그는 "죽으러 간 놈이 음식만 보면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홍콩 거리 식당에 걸어놓은 차슈(돼지고기 바비큐)나 거위가 되게 먹음직하더라고요. 고기를 걸어놓으면 식욕을 굉장히 자극해서 장사 잘 되겠네, 음식을 저런 식으로 디스플레이하면 되겠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 죽을 마음이 없어졌어요. 그냥 (한국에) 돌아가서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죠."

귀국 후 그는 채권자들을 모아놓고 "기회를 주면 빚을 모두 갚겠다"고 설득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쌈밥집을 발판으로 재기에 나섰다.

"음식점 하다가 겉멋이 들어 무조건 사업을 크게 벌인 거죠. 한창 건설 시장이 클 때여서 일산에서 목조주택 사업을 했어요. 공교롭게도 주택 위에서 논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실린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일주일 만에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고 자재 단가가 폭등해 집을 지어도 빚만 남게 된 거였죠. 그래도 다행히 채권자들이 기회를 줘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재기 과정은 혹독했다. 한겨울에 식당 홍보 전단지를 돌리다가 아파트 경비원에게 쫓겨나기 일쑤였다. 새벽부터 가락시장에서 장 보고 하루 종일 식당 일을 하면서 일수(원금과 이자를 매일 상환)를 갚아나갔다. 자동차 연료비가 없어 집에서 식당까지 1시간30분씩 걸어다녔을 정도로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때 고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며 "굉장히 성숙해졌고 겸손해졌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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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만 남은 상태에서 가게를 운영해야 하니까 절박했죠. 내일은 손님이 얼마나 올까 생각하면 갑갑했어요. 그나마 저는 음식 감각도 있고 운이 좋아 다시 일어섰지만 다른 자영업자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명예퇴직 후 어쩔 수 없이 식당을 열어 기댈 때도 없고…. 장사에 첫발을 딛는 사람들을 이끄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게 됐죠."

죽기 살기로 일해 외식 프랜차이즈로 일가를 이뤘다. 그가 경영하는 더본코리아는 `원조쌈밥집` `본가`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홍콩반점0410` `빽다방` `역전우동0410` `미정국수0410` `백스비어` `돌배기집` `백철판0410` 등 11개 브랜드(전국 매장 1345곳)로 지난해 매출액 1749억원을 올렸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만족도)로 고객을 사로잡은 그는 사업 수완이 탁월해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의 `미다스의 손` `밥 재벌` `장사의 신`으로 불린다.

`금수저`라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사실상 그는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최근 2년 새 `쿡방 스타`로 뜨면서 근거 없는 루머로 유명세를 치른 그를 만나 솔직한 심경을 들었다. 그동안 억울한 게 많았던 탓에 대답은 거침없고 빨랐다.

―증조부 때부터 충남 예산에서 사학재단 예덕학원(예산고·예화여고)을 운영했고 현재 백 대표도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사학 재벌이라고들 하던데요.

▷식당 시작할 때 1원 한 푼 안 받았어요. 1993년 27세에 혼자 힘으로 논현동 쌈밥집을 개업했죠. 사학재단이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닙니다. `금수저니까 망했다가 일어났겠지`라는 말을 들을 때 억울해요. 저희 아버지는 제가 망한 것조차 몰랐어요. 물론 남들보다 유리했을 수도 있죠. 좋은 환경에서 자라 여유 있게 먹어볼 기회가 있었으니까요. 음식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생기고, 간접 경험도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고요.

―대학 시절에 남다른 생존법이 있었다고요.

▷일단 용돈을 받으면 학교 근처 중국집에 친구들을 끌고가 탕수육, 팔보채 등 비싼 요리를 시켜 크게 한턱을 쐈어요. `이래도 괜찮으냐`고 친구들이 걱정할 만큼 용돈을 전부 쏟아부었죠. 그다음부터는 친구들이 점심을 사주고 술도 사줬어요. 세게 한 번 얻어먹었으니까 `종원아, 이거라도 우리가 낼게`라고 미안해 하면서요.

―대학 1학년 때 아르바이트하던 호프집을 인수한 비결은 뭔가요.

▷서울 압구정동에서 할머니가 혼자 영업하던 가게였어요. 일하다보니까 나름대로 장사 감각이 생겨 치킨을 배달하자고 제안했죠. 1985년이었는데 콜라캔을 하나씩 넣어준 건 아마 최초였을 것 같아요. 매출이 늘고 정신없이 장사가 잘됐죠. 그런데 할머니가 병이 드셔서 가게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할머니가 `네가 한 번 해봐라, 돈이 없으면 갚아. 네 능력이면 충분히 갚을 수 있다. 믿고 가게를 줄 테니까…`라고 용기를 주셨죠. 학교 수업에 관심이 없어 가게를 인수해 돈을 벌었어요. 운도 따라 호프집이 잘 돼서 카페도 열었죠.

―입대 후에는 군대 간부식당을 `접수`했다고요.

▷제대 1년을 앞두고 맡게 됐어요. `군대에서도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없을까`라고 고민한 끝에 식단을 완전히 바꿔놨죠. 계란국만 끓이지 않고 프라이도 해주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대접에 퍼주는 대신 1인용 뚝배기에 담아주니까 인기를 끌더라고요. 반찬을 뷔페식으로 바꾸는 대신에 `남기면 벌금 1000원`이라고 하니까 잔반통이 평소 4분의 1로 줄었죠.

―대학 졸업 후 외식업을 선택한 이유는요.

▷전 음식을 너무 좋아해요.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독학으로 요리를 배웠어요. 만들어보니까 재미있고, `이렇게 만들면 싸게 팔아도 되는데 왜 비싸게 팔지?`라는 의문이 생겼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을 파는 게 행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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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인 배우 소유진 씨, 두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백종원 대표. [사진 제공 = 백종원]

―먹는 즐거움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나요.

▷아이들(배우 소유진 씨와 사이에 낳은 세 살 용희 군과 두 살 서현 양) 보는 즐거움이죠. 게임보다도 먹는 게 더 좋아요(그는 틈날 때 `와우` `포켓몬고` 등을 즐기는 게임 마니아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뭡니까.

▷군대 가서 훈련 받을 때 첫 번째 먹었던 음식이죠. 학사장교 출신인데 뺑뺑이 치고 난 후 극도로 배고플 때 먹은 음식의 맛을 잊을 수 없어요. 역시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에요.

―가장 최악의 음식은요.

▷그야 당연히 배부를 때 먹은 음식이죠.

인터뷰에 앞서 지난 5월 논현동 `본가`에서 백 대표와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다. 그는 안주로 구운 오징어 입과 돼지머리 편육을 내왔다. 평소 요리할 때 버렸던 오징어 입은 더할 나위 없이 고소하고 쫄깃했다. 편육 역시 구우니까 감칠맛이 더해져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색다른 음식을 개발하는 재주가 남다르네요.

▷이미 다 있던 거예요. 이제 오징어 입은 편의점에서도 팔아요. 오징어 입에 한 마리 맛이 다 들어가 있어요. 다만 이빨을 잘 빼내고 먹어야 해요. 편육은 어릴 때부터 제사 지내고 남으면 프라이팬에 데워 먹었죠. 기름이 사방팔방 튀니까 뚜껑이 있어야 해요.

―1998년 특허등록한 대패 삼겹살은 어떻게 개발했나요.

▷실수였어요. 고기 써는 기계를 사야 하는데 너무 비싸서 햄 기계를 구입했죠. 삼겹살을 넣으니까 돌돌 말려 나오더군요. 손님들이 뭐라고 해서 즉석으로 `대패 삼겹살`이라고 둘러댔죠. 처음엔 다들 싫다고 하더니, 나중에 유행이 됐어요. 음식도 재미있어야 해요. 스토리가 있는 대패 삼겹살처럼요.

―경영에다 방송활동으로 바쁜데 레시피를 개발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요.

▷머릿속으로 음식을 만들어요. 틈만 나면 화장실에서 음식을 상상하면서 만들죠. 직접 요리를 하다보면 실패할 수도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실패하지 않아요. 자기 직전까지 되새김질하다가 다음날 출근해서 직원들에게 테스트해보라고 지시하죠. 몇 십년 그렇게 해왔어요(그는 인기 요리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에서 대다수 레시피를 직접 짜고 대본 없이 진행한다. 방송 중에 즉흥적으로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음식이 잘라 놓은 스팸 사이에 계란 4개를 깨뜨려 만든 스팸계란프라이. 만들기도 쉽지만 먹음직스러워 따라 하게 만든다. `만능간장` `가지덮밥` `라면전` 등 요리 본능을 일깨우는 그의 레시피는 온라인에서 공유되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집에 흔히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조리 시간이 길지 않아 자취생들의 필수 레시피로 자리 잡고 있다).

―`집밥 백선생`에서 국물떡볶이와 불고기, 라면 등에 액젓을 넣었는데요. 소스의 용도를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름길을 알려주는 것을 좋아해요. 오랫동안 숙성한 액젓을 넣으면 고기에 양념이 빨리 배고 깊은 맛이 나요. 액젓의 비린내는 불고기가 익으면서 다 날아가고요. 얼마 전 LA에 갔는데 안 믿는 교포가 계셔서 그 자리에서 불고기를 만들어줬더니 놀라더라고요. 평소에도 소스를 많이 연구합니다.

요리사 출신 아니어서 레시피대로 안해…응용하는게 재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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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요리하기 참, 쉽쥬~"라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정말 쉬울까요.

▷구구단처럼 레시피를 달달 외우면 안 돼요. 저는 요리사 출신이 아니라서 레시피를 그대로 하지 않고 응용하는 걸 좋아해요. 요리는 간 맞추는 게 어려운데 두려워하지 마세요. 조금 간을 세게 하면 맛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요리에 자신감도 생기고요. 건강을 생각해서 이것저것 피하면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요.

―외식 업계 대표가 `집밥 전도사`로 활약하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요리를 직접 해보면 식당 가서 타박을 덜할 것 같아서요. 자장면이 늦어지면 `지금쯤 춘장을 볶고 있겠구나`하고 이해하고, 김치 만드는 게 힘드니까 아껴 드시겠죠. 손님이 예의를 갖춰 대해주면 식당 주인들이 자신감과 용기를 갖지 않을까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식당을 창업할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외식 산업도 발전하겠죠. 맛집을 발굴하는 `3대천왕`도 주방에서 벽만 보고 외롭게 일하는 요리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방송이에요. 오랜 세월 손이 굽을 정도로 일하면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조만간 `푸드트럭 전도사`로 나선다고 들었습니다.

▷`3대천왕` 시즌2에서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로 푸드트럭을 방송합니다. 외식 산업이 발전하려면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재미를 느껴야 해요. 푸드트럭은 적은 비용(2000만~4000만원)으로 창업할 수 있죠. 힘들지만 재미있고 보람있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려고 해요. 먼저 강남역 9·10번 출구에서 장사 안 되는 푸드트럭에 경영 컨설팅을 할 겁니다. 제 전공이라 `물 만난 고기`처럼 촬영하고 있어요(외식산업의 활성화를 바라는 그의 진심이 때때로 곡해되기도 했다. 그의 브랜드가 늘면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잘되면 `골목상권 파괴자`라는 눈총을 받았다. 특히 그가 경영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음식점 17개가 몰려 있던 논현동 영동시장 먹자골목의 일명 `백종원 거리`가 집중 타깃이 됐다).

―억울해서 백종원 거리 식당을 철수시키고 있다고요.

▷2년 전 철수를 시작해 현재 본가, 한신포차, 알파갈매기, 빽다방, 구내식당 등 5개 점포가 남았어요. 영세상인을 죽인다고 욕을 먹으니까 정리하고 있어요. 다만 알파갈매기와 한신포차는 가맹점이고, 구내식당은 직원들 밥 먹는 곳이라서 제 마음대로 못해요. 저희 프랜차이즈 식당을 뺀 후에도 상권이 예전처럼 번화할지 지켜볼 겁니다.

―골목상권과 먹자골목은 다르다고 주장하셨는데요.

▷골목상권은 권리금도 거의 없는 뒷골목이에요. 정말 영세상인들이 장사를 하는 곳이죠. 반면 상권이 번화한 먹자골목은 누구든지 경쟁하는 곳이에요. 규제도 없고요. 대기업 프랜차이즈이든 자영업자든 권리금 수억 원을 내고 맛으로 정면 대결하는 곳이 바로 먹자골목이에요.

―가맹점 관리 원칙은 무엇인가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맛없다`는 지적이 나오면 바로 체크해요. 프랜차이즈는 100m를 가장 늦게 달리는 사람을 잘 끌고 가는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레시피를 알려줘도 잘 못 따라 하는 가맹점도 있어요. 그분들이 제대로 하도록 유도해 평균치를 맞춰야죠.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집 영업을 안 하는 이유는요.

▷진정으로 음식을 사랑하고 식당을 하고 싶은 사람들만 점포를 열어줍니다. 식당 일이 생각보다 힘들거든요. 요즘은 본사의 따끔한 조언도 자칫 갑질로 비칠 수 있어 모든 게 조심스러워요. 열정을 가진 분들만 본사의 진심을 알겠죠. 우리 브랜드를 이해하는 사람만 점주로 모십니다.

―대외 활동이 많아 가맹점 관리가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필드(현장) 관리는 브랜드 담당자가 하고 있죠. 제 역할은 따로 있고요. 경영의 큰 방향을 결정하죠. 매장 1345곳을 매일 찾아다니기는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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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백종원(왼쪽에서 둘째)과 형제자매들. [사진 제공 = 백종원]

―지난해 말 제주 중문단지에 오픈한 `호텔더본`(지하 1층, 지상 4층 148실)은 잘 되나요.

▷이제 하다 하다 호텔도 하느냐고 욕을 많이 먹었죠. 사업가는 확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개발허가를 받은 호텔을 인수했는데 객실보다 부대시설이 더 많아요. 숙박비를 7만~10만원(조식 포함), 아침 한식 뷔페 가격을 9900원에 책정했어요. `호텔 식당은 왜 비싸야 돼?`라고 생각했죠. 먹는 건 잘 줘야죠. 호텔이 비싸고 비행기 표값도 비싸면 그 돈으로 동남아로 가겠죠. 제가 제주를 흔들어놓고 싶네요.

―2005년 중국에 본격 진출해 성공을 거뒀는데 난관은 없었나요.

▷예전에는 외국의 한식당들이 김밥, 돈가스, 짬뽕, 회 등 수십 개 메뉴를 팔았어요. 하지만 한식은 한식다워야 합니다. 중국에서 한류 붐이 일어나자 한식은 동경의 대상이라고 판단해 완전 한국식 고깃집으로 승부했죠. 처음에는 메뉴 선택권이 너무 없다는 지적이 있어 흔들렸죠. 그런데 불만족스러워도 진짜 한국에서 먹는 것 같다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중국 사람들이 친구들을 데려와 `여기가 원조`라고 치켜세워요. 가능하면 한국의 맛 그대로 정통 한식을 구현하는 게 한식 세계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현재 중국에서는 `본가` 매장 19개, `빽다방` 2개, `새마을식당` 1개, `백스비어` 1개가 운영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호주 등에 매장 76개가 진출해 있다).

―해외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 계획인지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자리가 잡히면 유럽에 갈 겁니다. 인력 때문에 매장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요. 다들 힘들어서 그런지 외식업을 안 하려고 해요. 다행히 최근 셰프라는 직종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예화여고에 조리학과를 개설할까 고민 중입니다.

 그는 2013년 배우 소유진 씨(36)와 결혼했다. 15세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두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귀가해 놀아주는 게 백 대표의 행복이다.

―얼마 전 방송에서 `감자 짜글이` 맛에 푹 빠져 결혼이 늦어졌다고 하셨는데 정말인가요.

▷에이, 농담이죠. 그냥 포기했죠. 나이 먹을수록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더 까다로워졌거든요. 부모님과도 잘 맞아야 하고 직원들과 융합도 중요하거든요. 소개는 많이 받았는데 연애는 많이 안 해봤어요.

―아내의 요리 실력은 어떤가요.

▷솔직히 맛있겠어요? 내가 가르쳐주는 선생님인데. 그래도 일반적인 주부보다 잘하고 계속 늘고 있어요.

―대표님 집밥 메뉴와 냉장고 안이 궁금하네요. 훈제 굴부터 트러플 꿀, 마살라(인도 향신료) 등 희귀한 식재료가 들어있다고 하던데요.

▷요리연구가는 모든 장르를 다 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요리를 다 해봐요. 집밥은 애기들한테 맞춰 이유식을 해먹어요. 주로 스튜나 저자극성 음식이죠.

―방송에서 부인이 두 아이가 아빠만 좋아한다고 질투하던데요.

▷집에 가면 딸이 아빠만 찾아요. 아들은 포켓몬고 같이 잡으러 다녀서 저를 좋아하죠. 그런데 엄마가 만든 음식을 더 좋아해요. 맛없는데….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하루 2시간씩 운동해요. 많이 먹으니까요.

―사회복지학과 출신이라 기부에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요.

▷네, 저도 기부를 합니다. 번 돈으로 사업을 키워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외식업은 소비자에게 행복을 준다고 생각해요(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는 방송 출연료와 광고료를 한식조리학과 학생들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저소득층 어린이 환자 치료비로 기부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요.

▷우리 음식이 가장 저렴하면서도 뭔가 필요한 음식의 기준이 됐으면 합니다. 음식이 너무 비싸면 안 돼요. 점주들도 책임감을 느끼면서 같이 가도록 소통해야죠. 제가 떠나도 돌아갈 수 있도록 회사 규모도 키우고요. 대부분 사업가의 꿈이기도 하죠.

백종원 대표는

1966년 충청남도 예산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가 백창현 예덕학원 설립자이며, 부친은 백승탁 전 충남교육감이다.

1985년 서울고를 졸업한 후 1989년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미식가 부모 덕분에 전국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에 눈뜬 그는 대학 1학년 때 호프집을 인수하며 외식 산업의 길로 들어섰다.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성공시킨 후 TV에 출연하면서 유명인이 됐다.

집에서도 쉽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줘 `백주부` `집밥 전도사`로 불리기도 한다. 2013년 배우 소유진 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지난 3월 동국대 예술경영학과 객원교수로 임용됐으며 저서로는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 `백종원의 식당 조리비책` `초짜도 대박나는 전문식당` `무조건 성공하는 작은식당`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 등이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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